반도체 R&D시설 20조 투자하는 삼성…稅혜택 2000억→4조 급증

입력 2024-11-27 17:55
수정 2024-11-28 01:47

정부가 불과 5개월 만에 추가 반도체 지원책을 내놓은 것은 국내 반도체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반도체 투자와 생산을 급격히 늘려 경쟁이 심화하고 있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반도체 보조금 축소 등 정책 변화 가능성도 커졌다. 정부가 세제·재정·금융·인프라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선 이유다.○커지는 세제 혜택 27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지원 방안’의 핵심은 반도체 분야의 세제 지원 확대다. 정부는 반도체 기업의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을 높이기로 했다. 국가전략기술은 기본적으로 대·중견기업 15%, 중소기업 25% 등의 투자세액공제율이 적용되는데 이를 더 높인다는 것이다.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대·중견기업 20%, 중소기업 30% 등으로 5%포인트씩 공제율을 상향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장비 등 R&D를 위한 시설 투자를 포함하기로 했다. 현재 생산라인 등 사업화를 위한 시설은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되지만, R&D 시설 투자는 일반 투자세액공제가 적용돼 공제율이 대기업 1%, 중견기업 5%, 중소기업 10%에 불과하다. 이번 세제 개편이 현실화하면 R&D 시설 투자 공제율도 대·중견기업 20%, 중소기업 30% 등으로 높아진다.

업계에서는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R&D 시설 투자를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해 달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에 짓는 차세대 R&D 단지 ‘NRD-K(New Research and Development-Kiheung)’가 대표적이다. 이 시설 투자금은 20조원에 달하지만, 세액공제율은 1%에 그친다. ‘사업용 시설’이 아니어서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바뀌는 세제 혜택을 적용하면 삼성전자가 받는 세액공제 금액은 2000억원이 아니라 4조원으로 커진다. 이 밖에 정부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주요 원재료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동박적층판(CCL)을 만들 때 쓰는 동박, 유리섬유 등이 대표적이다.○반도체업계 ‘환영’국내 반도체업계는 정부의 세제 지원 확대 방침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작년에 이어 올해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하는 등 재정 여력이 부족한 가운데 정부가 세제 혜택 확대 방침을 정한 것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중견·중소 반도체 기업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빠졌다는 점을 이번 대책의 한계로 지적한다. 정부는 세제 혜택 확대, 전력망과 용수, 기반시설과 인력, 금융 등 반도체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 지원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내년에 소재·부품·장비, 팹리스, 제조 등 반도체산업 전반에 14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부는 산업은행의 반도체 저리 대출 프로그램(4조2500억원)을 비롯해 설비 및 R&D 투자 대출, 보증료 감면 및 보증 비율 상향, 수출대금 미수령액 손실 보상 등으로 ‘다각도 금융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1200억원의 신규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하고, 연내 200억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상생 펀드’ 투자도 추진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요국이 첨단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보조금을 비롯해 유례없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며 “우리도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상용/황정수/황정환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