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법안 내용을 받은 게 전혀 없습니다. 언론 기사를 보고 공정위에 의견을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플랫폼 경쟁촉진법’과 관련해 한 관계부처 관료는 10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플랫폼법은 네이버·카카오 등 일정 규모를 넘는 플랫폼을 감시하고 이들의 시장 교란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공정위가 마련하고 있는 법안이다. 이른바 ‘독과점 플랫폼’을 미리 지정해 각종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초유의 사전규제 법안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법안 추진 과정에서 관계부처와의 협의, 업계와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법안이 공식화된 이후 공정위 행보는 첩보 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다. 이해 관계자들이 법안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패싱’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법이 도입되면 구글, 메타 등 해외 플랫폼에도 규제가 적용돼 통상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통상 담당 부처에는 아직까지 법안 문구가 단 한 글자도 공유되지 않았다. 부처들 사이에선 “공정위에서 워낙 정보를 가리고 있어 혹시 국회 쪽에선 뭔가 들을 수 있을지 수소문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국회 상황도 다르지 않다. 공정위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실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민주당의 입법과제였던 법안을 추진하는 데도 여당 의원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정위가 법안 내용을 감추면서 설명을 들어달라고 하니 황당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플랫폼들도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플랫폼업계는 공정위와 지난 9일 간담회 개최를 조율했다. 하지만 업계가 “법안의 대략적인 내용이라도 알아야 논의가 되지 않겠느냐”고 요청해 없던 일이 됐다. 한 플랫폼 관계자는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두들겨 맞는 상태”라고 했다.
공정위의 숙원인 플랫폼법은 올해 운영된 전문가 태스크포스(TF)팀의 강한 반대로 좌초하는 듯했다. 공정위가 이 법안을 재추진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소상공인과 소비자 보호였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예컨대 ‘끼워팔기’ 규제가 법안에 포함되면 쿠팡이 ‘와우멤버십’ 회원들에게 쿠팡이츠 할인을 제공하는 서비스 등은 불법이 될 수 있다.
공정위가 군사작전 하듯 법안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결국 최종 이해당사자인 소비자를 배제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학계 인사는 “내용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