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 지급 시기 등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 쟁점(모수 개혁)과 관련해 구체적 수치를 뺀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연금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재정계산에 착수한 지 1년여 만에 알맹이 없는 ‘맹탕 개혁안’을 내놓은 것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보험료율에 대해선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점진적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인상률은)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 그룹에 따라 차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도 “공론화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고 수급 개시 연령에 대해선 “고령자 계속고용 여건이 성숙한 이후 논의하겠다”고만 했다.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당초 보험료율을 9%에서 12%, 15%, 18%로 올리거나 연금 지급 시기를 65세에서 66세, 67세, 68세로 늦춰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소득대체율은 현행 42% 유지 또는 45%, 50%로 높이는 방안을 권고했다. 기금 수익률은 지금보다 0.5%포인트 또는 1%포인트 높이는 것을 제안했다. 재정계산위가 제시한 시나리오만 24개에 달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구체적인 수치를 담은 개혁안을 내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는 기금 수익률만 1%포인트 높이겠다고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모수 개혁은) 의견이 다양한 만큼 특정안을 제시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폭넓게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그러면서 기초연금 단계적 인상, 출산이나 군 복무 때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 인정하는 출산·군 복무 크레디트 확대 등 가입자 혜택을 늘리는 방안은 연금개편안에 포함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개혁안에 구체적 수치를 어떤 것도 제시하지 않은 건 정말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연금 개혁의 시간을 오히려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