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산 전기차 내수 판매량이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상 최초로 월 5000대 이상 팔려나간 전기차 모델도 등장했다. 신기록의 배경엔 정부의 ‘늑장 보조금’이 있다. 소비자들에게 지급할 보조금 규모가 2월 들어 확정되면서 ‘예약 대기’ 상태였던 물량이 한꺼번에 인도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3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내수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 전기차(EV)는 전년 동월보다 34.9% 증가한 1만6510대 판매됐다. 직전 월간 최대 판매 기록인 작년 10월의 1만4886대보다 약 1600대 더 많이 팔렸다.
베스트셀링 전기차는 5025대 팔린 기아의 소형트럭 봉고 EV였다. 단일 전기차 모델이 월 5000대 이상 팔린 것은 봉고 EV가 처음이다. 현대차 포터 EV가 4872대로 뒤를 이었다. 대표 전기 승용차인 EV6는 1951대, 아이오닉 5는 1911대 판매됐다.
판매량을 가른 것은 정부 보조금이다. 보조금이 확정되지 않은 올 1월 현대차의 아이오닉 5·6는 각각 76대, 23대 팔리는 데 그쳤다.
같은 달 포터 EV는 13대 판매됐고 GV60는 판매량이 7대에 불과했다. 지난달 판매량이 5000대를 돌파한 봉고 EV는 29대였다.
보조금을 기다리느라 정체돼 있던 대기 수요가 사라지면서 전기차 출고 대기 기간도 줄어들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6의 출고 대기 기간을 지난달 13개월에서 이달 5개월로 줄여 잡았다. 아이오닉 5도 매달 초 12개월로 소비자들에게 안내했지만, 이달 들어 6개월로 짧아졌다. 제네시스 GV60도 12개월에서 6개월로 줄었다.
한 해 단위인 국내 전기차 보조금은 보통 9~10월에 소진되는 게 일반적이다. 보조금이 소진된 뒤 다음해 보조금이 확정되는 시기는 빨라도 2월 초다. 그사이에는 전기차 출고가 사실상 ‘올스톱’ 된다는 게 업계와 소비자들의 호소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1년에 9개월만 열린다는 뜻이다.
한 전기차 업체 임원은 “보조금이 10월에 소진된 뒤 차를 계약했다고 가정하면 재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11월이 아니라 다음해 2월에야 인도가 가능하다”며 “업체는 3개월간 사업을 못 하고 차가 필요한 소비자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한다”고 토로했다.
박한신/김형규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