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기업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약 425억원)를 투자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로인 SMR을 앞세워 차세대 에너지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테라파워와 3000만달러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고 4일 발표했다. 조선과 건설기계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원전 분야에 투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올초부터 테라파워와 투자 협의를 해왔다”며 “앞으로 관련 분야의 사업 협력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테라파워와 투자 계약을 체결한 기업은 국내에서 SK그룹에 이어 현대중공업그룹이 두 번째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 8월 테라파워에 대한 2억5000만달러(약 354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마무리했다.
테라파워는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공동이사장이 2008년 설립한 회사다. 차세대 원자로인 SMR의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FR 기술은 고속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을 통해 발생한 열을 액체 나트륨 냉각재로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동 중인 3세대 원전에 비해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진일보한 4세대 원전 기술로 꼽힌다.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높은 안전성 확보를 통해 차세대 SMR 기술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테라파워 투자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조선해양은 조선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원자력 분야 역량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구상이다.
장기적으로는 해상 원자력 발전, 원자력 추진선박 분야의 미래 기술을 선점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현대중공업은 한국형 핵융합연구장치(KSTAR)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주요 핵심 설비 개발에 참여하며 차세대 에너지원 기술 역량을 키워왔다. 특히 지난해 그룹 차원에서 ‘수소 드림 2030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원자력뿐 아니라 수소, 암모니아, 메탄올 등 다양한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테라파워는 SK그룹에 이어 현대중공업그룹의 투자 유치를 계기로 SMR 혁신기술 개발 및 사업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테라파워는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SFR 기술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8년이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SMR 시장은 글로벌 탄소중립 열풍에 힘입어 2019년 45억7000만달러에서 2040년 300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SMR은 탈탄소 흐름 속에서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차세대 에너지 시장을 선점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