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쓰지 못할 수도 있어 강력범죄 영역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범죄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수사를 최대한 동원해야 합니다.”
1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만난 천기홍 반부패·강력수사협력부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2기·사진)는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천 검사는 2007년 전주지검에서 조직폭력배 범죄 수사를 시작으로 약 12년간 강력범죄를 담당해왔다. 2008년 조직폭력배가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과 손잡고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뒤 시세 조종과 회사 자금 횡령 등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3세대 조직폭력배 사건’(수사 시기는 2010~2018년)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들을 수사했다. 그는 수사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달 말 대검찰청으로부터 블랙벨트(1급 공인전문검사)로 인증받았다. 국내에서 블랙벨트로 인증받은 검사 7명 중 강력범죄 수사 담당자는 천 검사가 유일하다.
천 검사는 “그동안 조직범죄와 마약범죄 등 강력범죄는 공범이나 관련자의 진술을 받은 뒤 다른 조직을 수사하는 방식이었다”며 “검찰이 확보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으면 유죄 판결로 이어졌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된 올해부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도박사이트 운영조직 등 해외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에 대한 수사는 공범들의 진술을 주요 증거로 채택하고 있어 영향이 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형사소송법 제312조 개정안은 피고인·변호인이 동의해야만 재판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고인 측이 검찰 조사 단계에서 자백해도 법정에서 부인하면 자백 내용을 증거로 쓸 수 없다.
천 검사는 “제도 변화로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강력범죄 수사에 대해 강의할 때도 가해자 진술에 의존하지 말고 현장 검증, DNA 감정, 디지털 포렌식, 진술 분석 등 과학적인 방식을 총동원해 범행 경위를 파악할 것을 강조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결이 시급한 범죄 유형으로 보이스피싱을 꼽았다. 해외에 콜센터를 둔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다양한 수법을 통해 진화하면서 피해액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천 검사는 “중국 등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본거지로 삼은 해외 국가들과의 공조를 통해 범행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며 “보이스피싱뿐만 아니라 다른 강력범죄도 국경을 초월해 발생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초국가 조직범죄’를 맡을 ‘마약·조직범죄 수사청’ 신설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 검사는 앞으로도 강력범죄 수사 전문가로서 역량을 키울 계획이다. 그는 “국민의 안전과 가장 밀접한 강력범죄에 대한 수사 능력 강화, 조직범죄 법리 연구, 사회경제 변화에 따른 다양한 범죄 예방방안 마련 등을 고민하는 전문가로 꾸준히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