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742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3653억원) 대비 두 배를 넘는 역대급 실적이었다. 위생장갑 원료로 주력 제품인 NB라텍스가 코로나19 여파로 불티나게 팔렸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그러나 ‘라텍스 호황’이 1년 이상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경쟁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NB라텍스 생산량을 늘렸고, 코로나19도 진정될 기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올 상반기 NB라텍스의 t당 가격은 작년보다 두 배 높은 2000달러까지 치솟았다. 금호석유화학이 올 3분기까지 거둔 영업이익은 1조9915억원. 창사 이후 역대 최대치였던 2011년(8422억원)의 2.3배에 달한다. 공급 과잉 우려에도 현 생산 능력의 두 배에 달하는 증설 투자를 결정했다. 글로벌 업체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영업도 펼쳤다. 이런 배경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준경 영업본부장(부사장·사진)의 과감한 전략적 결단이 있었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설명이다. “만들면 무조건 팔 수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말 울산공장의 7만t 규모 NB라텍스 증설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현재 연 62만t가량인 NB라텍스 생산 규모는 71만t까지 늘어난다. 지난 6월엔 24만t 증설 투자를 결정했다. 증설이 완료되는 2023년 말엔 95만t의 생산 능력을 갖춘다. 의료용, 산업용, 요리용으로 폭넓게 활용되는 라텍스 장갑은 코로나19 차단용으로 각광받으며 판매량이 급증했다.
작년 말 금유석유화학은 증설 투자 여부를 놓고 내부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공급 과잉으로 NB라텍스 가격이 급락하거나 팔리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NB라텍스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업계 1위인 만큼 무리한 투자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때 영업본부가 나섰다. 당시 해외영업을 이끌던 박 부사장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만드는 만큼 무조건 팔 수 있다. 책임지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박 부사장의 공격적인 영업전략에 반신반의하는 임직원이 적지 않았다”며 “1년여가 흐른 지금은 그런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신뢰 기반한 영업전략 ‘결실’1978년생인 박 부사장은 2007년 금호타이어 차장으로 입사한 후 2010년 금호석유화학에 합류했다. 이후 지금까지 해외영업 일선에서 활동 중이다. 박 부사장은 10년간 해외 네트워킹에 주력해왔다.
박 부사장 영업전략의 핵심은 ‘신뢰’로 표현된다. 그는 작년 말레이시아의 라텍스 장갑 제조업체와 화상 미팅을 하던 중 NB라텍스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하소연을 듣게 됐다. 곧바로 영업부서에 과도한 판매 가격 상승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 결과 말레이시아 협력 업체는 생산을 차질없이 진행했고, 오히려 거래 규모를 늘리면서 회사에 더욱 큰 수익으로 돌아왔다.
박 부사장은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영업본부장에 선임됐다. 백종훈 현 대표이사가 직전에 맡았던 핵심 보직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2조5000억원가량의 ‘깜짝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은 전체 매출의 70%가량이 수출에서 발생한다”며 “박 부사장의 영업 역량 등에 대한 임직원의 신뢰가 한층 두터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