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략비축유 5000만 배럴 푼다…한국도 동참

입력 2021-11-23 17:40
수정 2021-11-24 02:5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하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 인도 등 주요국도 비축유 방출에 동참하기로 했다. 치솟는 국제 유가를 잡고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한 결정이다. 미국 대통령의 비축유 방출은 지금까지 단 세 차례만 있었던 ‘희귀하고 결정적인’ 카드로 꼽힌다. 하지만 전략비축유 방출을 반대해온 산유국들이 맞대응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셈법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미국 백악관은 23일 성명을 통해 “내달 중순부터 비축유 5000만 배럴을 방출할 계획이며 필요한 경우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5000만 배럴 가운데 3200만 배럴은 미 에너지부가 앞으로 수개월간 방출한다. 나머지는 앞서 의회가 판매 승인한 석유의 일부로 계획보다 빨리 시장에 풀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이날 “미국이 제안한 비축유 공동 방출 제안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구체적인 비축유 방출 규모와 시기, 방식 등은 추후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인도 정부도 “비축유 500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했으며 추가 방출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일본도 수일분의 비축유를 방출할 계획이며 추가 방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NHK가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연일 ‘유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휘발유 등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급등했다. 31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었다. 최근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달러로 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치솟는 물가에 워싱턴포스트와 ABC의 최근 설문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41%로 취임 이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당장 내년 중간선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꺼내든 카드가 비축유 방출이라는 분석이다. 비축유를 풀어 에너지 가격을 진정시켜야 인플레이션도 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미국의 비축유는 6억615만 배럴 수준으로 연간 수입량의 절반가량에 해당한다. 2011년 리비아 전쟁,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1991년 걸프전 때 대통령이 비축유를 방출한 전례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산 원유 수출 금지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비축유 방출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대표단은 현재 시장 상황상 비축유 방출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올 4분기에 세계 원유 수요가 코로나19 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OPEC+가 미국의 비축유 방출에 ‘맞불’을 놓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OPEC+ 내부에서는 다음달 2일로 예정된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재고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PEC+가 다음 회의에서 현재의 하루 40만 배럴 증산 규모를 줄이는 방법으로 맞대응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원유 증산을 끊임없이 요구했으나 OPEC+는 거부해왔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비축유 방출이라는 강경책을 내놓을 경우 우방이자 OPEC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축유를 풀었는데도 부작용만 발생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가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으로 미국 내 셰일오일·가스 생산이 위축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책임론도 불거질 전망이다.

이고운/맹진규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