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 가입 추진하는 中의 노림수 [특파원 칼럼]

입력 2021-09-17 16:39
수정 2021-09-30 12:06

중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공식 신청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6일 CPTPP 비준서 수탁국인 뉴질랜드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 영국 호주가 새로운 3자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를 발족한 직후 나온 조치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출범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도 가입했다. RCEP와 CPTPP는 아시아·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차이점이라면 RCEP 창설에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한 데 비해 CPTPP는 미국이 중심이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전신으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TPP 논의에서 빠졌고 남은 국가들이 2018년 CPTPP를 결성했다.

중국은 과거 미국 주도의 TPP가 자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1 대 1 대결 위주로 중국 견제에 나서자 중국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면서 RCEP 출범을 독려했다.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RCEP 비준 직후 CPTPP 가입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이 CPTPP에 가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통상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도 걸림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CPTPP 가입을 밀어붙이는 건 배후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CPTPP에 가입하려면 기존 11개 회원국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멕시코와 캐나다가 중국의 가입을 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미 3개국 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독특한 조항 때문이다. ‘구성국이 비시장경제체제와 FTA를 맺으면 다른 구성국이 일방적으로 USMCA를 파기하고 나머지 구성국과 FTA를 체결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비시장경제체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중국이 타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의 가입을 찬성할 것으로 예상하긴 어렵다.

CPTPP는 시장 개방 정도 등에서 RCEP보다 기준이 더 높다. RCEP의 개방률은 85% 수준으로 민감한 제품을 제외할 수 있는 폭이 넓다. CPTPP는 개방률이 95%에 이른다. 또 지식재산권과 노동권 보호, 자국 기업 보조금 제한 등에서도 회원국들에 보다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올해 CPTPP 의장국인 일본이 중국의 가입을 지지할 가능성도 낮다.

이런 제약에도 중국이 CPTPP 가입을 계속 추진하는 건 대내외에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수호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가입이 무산된다 해도 반대한 국가들에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돌릴 수 있다. 지난해 말 시장 개방 확대 등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유럽연합(EU)과 투자협정을 체결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CPTPP 가입을 위한 사전 준비를 마친 대만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당초 TPP 창설을 주도했던 미국은 딜레마 상황에 몰리고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TPP를 추진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이 CPTPP에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간단하진 않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미국 제품 우선 구매 등을 핵심으로 하는 ‘바이 아메리칸’ 공약을 내걸었다. 국내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기 전에는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겠다고도 공언했다. CPTPP 복귀를 추진하다가 핵심 지지층을 잃을 수 있다. 정치·외교적으로는 다자주의로 선회했지만 경제 문제에선 아직 미국 우선주의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CPTPP 재가입을 미룰수록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RCEP와 CPTTP에 모두 가입해 있는 싱가포르는 이미 중국의 가입을 찬성하고 나섰다. RCEP 가입국들은 중국과의 거래 증가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 불가능한 목표를 추진하면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려는 중국의 치밀한 계산이 또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