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낯선 남미'보다 더 몰랐던 것은 '익숙한 엄마'

입력 2021-06-10 18:21
수정 2021-06-11 02:10
“20대 때는 항상 친구와 여행을 다녔다. 30대가 되자 서로 바빠 혼자 세계를 돌았다. 곳곳에서 친구를 사귀었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조헌주 작가가 어머니 이명희와 남미로 떠난 이유다. 《서먹한 엄마와 거친 남미로 떠났다》는 모녀가 3개월 동안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 8개국을 유랑한 과정을 담담히 소개한다. 딸의 시선을 따라가며 데면데면했던 모녀 사이가 어떻게 좁혀지는지를 에피소드를 통해 상세히 풀어낸다. 둘은 파라과이 최대 빈민가 ‘자카리타’를 헤매고, 볼리비아에선 숙소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했다.

모녀가 험난한 남미로 여행을 떠난 계기는 엄마가 겪은 교통사고였다. 딸은 ‘언젠가 가겠지’ 하며 막연히 미뤄왔던 모녀 여행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친 위기가 생각을 바꾼 것이다. 그는 “엄마는 항상 옆에 든든하게 있는 존재로 알았는데, 사고를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며 “정작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늦기 전에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여행을 통해 딸은 남미의 풍경보다 어머니의 낯선 모습에 놀랐다. 강인하고 억척스러웠던 60대 여성은 어느새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변했다. 낯선 곳에서 겁을 먹기도 하고, ‘아름답다’는 칭찬 한마디에 해맑아지기도 했다. 그는 “엄마도 여자고 사람이었다. 부모 자식이란 관계를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사이가 더 풍요로워졌다”고 돌아본다.

여행 끝자락에선 다시 어머니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관절통에 무릎이 시큰거려도 불평하지 않았다. 딸은 “(불편한) 내색 없이 남미를 완주한 엄마가 내 삶에 큰 영향을 줬다는 걸 깨달았다”며 “한 번도 내게 당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게 이끌어줬다”고 털어놓는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