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 "코로나 걸려도 예술가에겐 창작의 의무"

입력 2021-05-10 17:22
수정 2021-05-12 16:45

“코로나19 시대에도 사회에 던질 질문이 있다면 춤으로 풀어내야죠. 그게 예술가의 의무니까요.” 지난 9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40·사진)는 코로나19에 맞서는 예술가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역시도 코로나19 피해자다. 지난해 1월 한국에서 신작을 선보이려고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취소됐다. 올해도 지난 3월 내한 공연을 하려고 했지만 이번엔 그 자신이 확진자가 됐다. 내한 4일 전에 양성 반응이 나온 것. 지금은 완치됐지만 한국을 찾아오긴 어려웠다.

그가 선택한 건 영상. 국립현대무용단과 손잡고 현대무용 창작 과정을 담은 댄스필름 ‘승화’를 국내 팬들에게 선보인다. 다음달 4~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공연 ‘그후 1년’을 통해서다. 아구아데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안무, 의상, 음악 등 모든 걸 구상했는데 불가피하게 한국에 가지 못해 아쉽다”며 “영상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관객들이 음미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국내외 세 안무가의 신작을 선보이는 무대다. 안무가 김보라가 시공간을 정적으로 풀어낸 ‘점’을, 안무가 권령은은 예술가의 생존을 춤으로 풀어낸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를 보여준다. 아구아데도 국립현대무용단과 협업해 신작을 선보이려고 했으나 영상으로 대신한다.

아구아데는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인 호페시셱터무용단을 거쳐 아크람칸무용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2013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랄리아구아데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아구아데는 신작 발표를 내년으로 연기했지만 안무 지도는 이어갔다. 지난달부터 이달 9일까지 화상회의 앱 ‘줌’을 통해 여덟 차례 안무를 지도했다. 화상 인터뷰를 한 이날도 연습실에 카메라 3대를 설치했다. 정면과 양 측면에서 춤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승화’의 촬영을 맡은 백종관 감독은 “영상이지만 아구아데는 무용수들의 개인사와 춤의 미학을 동시에 선보여 달라고 요청했다”며 “영상도 공연처럼 생생히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아구아데는 연습실에서 직접 무용수들을 마주하진 않았지만 스크린을 통해 열정이 전해진다고 했다. 그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한국 무용수들의 뛰어난 집중력이 보인다”며 “아름다운 작품을 내놓을 거란 확신이 든다. 내년에는 꼭 한국을 찾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