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증권사들의 해외파생상품 수탁수수료가 사상 처음으로 3000억원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위험 상품인 해외선물·옵션 상품에 투자하려는 개인투자자와 이를 끌어들이려는 증권사들의 마케팅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 중에서도 키움증권의 해외파생상품 수탁수수료가 큰 폭으로 늘어나며 해외주식거래 수탁수수료를 뛰어넘었다. 다만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합법적인 도박판이 벌어진 것"이라며 해외파생상품 거래 급증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수료 171% 늘어난 키움증권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해외파생상품 수탁수수료 수입이 있는 12개 증권사의 수수료 수입 합계는 지난해 3392억원으로 전년(2058억원)대비 64.8% 급증했다. 해외파생상품으로 가장 많은 수수료를 거둔 곳은 키움증권이다. 전년(466억원)대비 171.0% 늘어난 1263억원을 기록했다. 키움증권의 지난해 외화증권(해외주식) 수탁수수료 수입인 744억원보다도 많다. 교보증권도 해외파생상품 수탁수수료가 720억원으로 전년(547억원)대비 31.6% 늘었다. 한국투자증권(324억원), 이베스트투자증권(285억원), 하나금융투자(235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해외파생상품은 해외선물과 해외옵션 등을 포함한다. 전 세계 주요 거래소에 등록된 지수나 원자재 선물 상품이 대상이다. 특히 선물은 계약당 금액이 큰 탓에 거래대금이 많다. 지난해 해외파생상품 거래금액은 7조7707억5633만달러(약 8758조 4194억원)로 전년(5조3352억2380만달러) 대비 45.6% 늘었다. 올해도 1분기까지 거래대금이 2조3798억5366만달러로 투자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키움증권은 개인투자자가 많은 증권사라 해외파생상품 수수료 수입도 급증했다. 개인들을 대상으로 수수료 할인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지난해 초 글로벌 파생상품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개인들이 가장 많이 거래한 상품은 '마이크로 나스닥 100'으로, 키움증권 내 거래의 38%를 차지했다. 마이크로는 증거금을 낮춰 개인들이 쉽게 선물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품이다. 원유 가격에 연동되는 크루드 오일 선물(9%)과 미니 나스닥100(9%), 마이크로골드(8%) 등이 뒤를 이었다. ◆'뇌관' 우려도해외선물은 지수나 원자재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판단하고 계약을 건다. 사실상 '홀짝 게임'에 가까운 구조다. 레버리지 계약을 하기 때문에 사놓고 기다리는 전략도 취할 수 없다. 단타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단타 거래가 많고 수수료가 높다보니 증권사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수입원으로 자리잡았다. 계약당 수수료가 7달러인 선물 상품을 하루 사이 5계약씩 사고 판다면 수수료는 약 40만원(5계약X10회X7달러)에 이른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해외파생상품 시장이 커지는 것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기관들의 헷지 수단인 해외파생상품을 개인이 이 정도 규모로 거래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들에게 파생거래를 적극 권장하듯 광고하는 건 도박판 하우스(관리자)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해외파생상품이 추후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내부적으로 홍보를 자제하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해외파생상품의 투자위험이 너무 크다보니 내부에서도 경쟁적 광고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