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이번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바로 위로 굴러다니는 것 같다. 메르켈 총리가 이례적으로 말을 바꾸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부활절 연휴 때 내린 봉쇄령에 대해 사과한 것은 독일에선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했던 일이다.
메르켈 총리는 “혼자만의 실수”라며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인정했다. 또 “깊이 후회하고 있으며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표 하루 만에 부활절 봉쇄령 계획을 철회했다.
이 봉쇄령은 지난달 22일 처음 알려졌다. 독일 과학자들은 봉쇄령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업 단체들은 뚜렷한 이득이 없고 경제활동만 방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좋은 지도자 기준 바꾼 백신메르켈 총리는 본인 개인에 대해서만 비난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오는 9월 치러질 독일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여당인 기독민주당을 지지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이런 사실들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어떤 정치인도 안전하지 않으며 정치적인 국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학적으로 보면 독일 내 코로나19 3차 확산은 전혀 특이하지 않다. 이른바 영국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독일 국민은 이전에 비슷한 상황이었을 때도 봉쇄령을 조용히 잘 견뎠다. 그러나 이번엔 백신으로 정치적 배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백신 공급으로 정치인들이 어떻게 평가받느냐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지도자들은 이제 자연의 조류를 억제하는 영웅적 임무를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을 예방하는 기술적 임무에 직면해 있다. 쉽게 성공할 수 있을 듯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팬데믹 초기 단계에 대중은 리더십을 중시했지만 현시점에선 관리 능력을 요구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한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 등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며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자체적인 백신 조달 계획을 수립한 국가 대열에도 합류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이를 범유럽연합(EU) 차원으로 추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또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만큼 충분한 백신 확보 계약을 맺지 못했다. 메르켈에겐 너무 늦은 선거메르켈 총리는 숙련된 과학자 출신이자 유럽 대륙의 가장 중요한 정치 지도자다. 그럼에도 백신 안전을 둘러싼 논쟁이 유럽 전 지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결국 독일은 일부 접종자에게서 나타난 혈액 응고로 인해 백신 사용을 보류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오는 9월 독일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팬데믹이 자연재해라기보다 정책실패라고 인식할수록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험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백신이 가져온 변화의 산물로, 미국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너무 일찍 온 1년으로 기록됐다. 반대로 메르켈 총리에게는 몹시 늦게 온 1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문제는 백신이 도착하기 전에 유권자들과 선거 국면에서 대면했다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메르켈 총리는 한참 늦게 유권자들을 만나게 된다.
정리=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이 글은 조지프 스턴버그 WSJ 칼럼니스트가 쓴 ‘Angela Merkel Has Lost Her Pandemic Touch’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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