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사진)이 31일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선택 대상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대립 중인 미·중의 ‘양자택일’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밝힌 것이다.
정 장관은 이날 기자단 브리핑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라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중 관계도 조화롭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미·중 관계에 대해선 “경쟁 구도도 있지만 한반도 평화, 기후·환경 변화 대응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도 굉장히 많다”고 했다.
정 장관은 4월 2일 중국 샤먼을 방문해 다음날 왕이 외교부 장관 겸 국무위원과 외교장관 회담을 할 예정이다. 지난 2월 9일 취임한 정 장관의 첫 해외 출장으로, 왕 장관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2일 미국 워싱턴DC에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참석하는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가 열린다. 한·미·일 안보회의가 열리는 와중에 정 장관이 중국행을 택한 것을 두고 외교가에선 “동맹인 미국에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의도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고 우연히 시기가 겹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직 안보부처 관계자는 “두 회의 모두 미·중 관계를 주요하게 다룰 텐데 미국에선 한국의 ‘대중 압박 협력’, 중국에선 ‘반중 전선 불참’이란 상반된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 있다”며 “그럴 경우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의 사이가 불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은 이날 일본을 향해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조기에 열리길 희망한다”며 관계 개선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가 됐든지, 일본 외무상이 한국을 오든지, 어떤 형태로든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의 중재를 요청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이 풀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