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36·사진)은 15세였던 2000년에 프로골퍼가 됐고, 16세에는 메이저대회(KLPGA 선수권) 챔피언에 올랐다. 그가 세운 당시 최연소 기록들이다. 201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은퇴했던 그가 7년 만에 복귀한다. 최연소 대신 ‘최고령’ 타이틀을 달고서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난 그는 “어릴 때부터 선수로서 매주 똑같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는데, 은퇴 후에는 스트레스가 줄면서 더 편하게 골프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신인 때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올해 어떤 성적을 낼지 궁금하고 스스로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필드를 떠난 뒤에도 배경은은 코스 해설과 레슨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면서 골프와 연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코스에선 마이크를 잡고 곁눈질로는 후배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미련 없이 떠난 줄 알았는데 후배들이 경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왠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필드 안’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복귀를 결심했지만 주변에는 알리지 않았다. 초청 선수로 몇몇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후배들과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겨루기 위해 뒤에서 조용히 칼을 갈았다. 은퇴 후 유명 교습가들의 책과 골프이론서 등을 읽어가며 스스로 쌓은 레슨 노하우로 직접 자기 스윙을 분석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열린 KLPGA투어 2021시즌 시드순위전에서 31위를 차지해 1부 투어 진출권을 7년 만에 되찾았다. 배경은은 “스마트폰이 내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며 웃었다.
“선수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밖에서 바라보니 제대로 보이더라고요. 지인들과 연습 라운드에서 힘들이지 않고도 잘 치니 ‘다시 프로에 도전해 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막상 제가 (시드순위전에서) 붙었다고 하자 ‘정말이냐’며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배경은은 한눈팔 새 없는 승부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당분간 ‘투잡족’의 생활을 이어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연을 이어온 제자들이 붙잡아서다.
“시드전에 붙은 걸 축하한다고 하면서도 많은 분이 ‘레슨은 계속해야 한다’고 해서 1주일에 하루는 정신적으로도 쉴 겸 레슨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배경은은 제주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복귀전을 준비하고 있다. 마침 오는 4월 제주에서 열리는 KLPGA투어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이 그의 복귀전이다.
올해 2승을 목표로 잡았다는 배경은은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가능한 한 오래오래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며 “마흔 살까지 뛰고 기회가 된다면 시니어 투어에서도 뛰고 싶다. 실력만 된다면 다시는 클럽을 놓지 않고 싶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는데, 여유를 갖고 다시 돌아온 투어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스스로도 궁금합니다. 제가 큰 좌절감을 느꼈던 US여자오픈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출전해보고 싶고요. 후배들에겐 제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잘 들어주는 ‘큰언니’가 되고 싶어요.”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