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키보드 좀 두드려 본 사람이라면 ‘첫댓 사수’의 중요성을 안다. ‘첫 번째 댓글 사수’의 줄임말로, 글의 첫 번째 댓글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뜻한다. 원글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첫 댓글의 내용에 따라 이후 댓글의 여론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특성상 게시물 가운데 정치, 사회 관련 뉴스에 대한 내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내용의 글일수록 첫댓을 차지하기 위한 속도전과 첫댓이 만든 흐름을 뒤집기 위한 심리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곤 한다.
첫댓의 중요성은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1951년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는 사람들의 사회적 동조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직선 몇 개를 보여주고 길이가 같은 것을 찾도록 했다. 혼자서 답할 때 정답률은 99%였다. 하지만 집단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린 답을 고르고 난 다음에는 63%까지 떨어졌다. ‘지록위마’가 거짓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애시는 ‘초두 효과(primacy effect)’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에게 특정인에 대한 몇 가지 단어를 들려주고 인물 평가를 해보라고 했다. 한쪽 참가자들은 “똑똑하다, 근면하다, 충동적이다, 비판적이다, 고집이 세다, 질투심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쪽에는 순서만 바꿔 “질투심이 강하다, 고집이 세다, 비판적이다, 충동적이다, 근면하다. 똑똑하다”고 제시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내용을 먼저 들은 참가자들의 인물 평가가 더 높았다.
두 실험을 종합하면 첫 번째 댓글의 내용과 여기에 동조하는 다른 사람의 댓글이 결합할 경우 다른 사람의 생각에도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때문일까. 일부 커뮤니티에선 하루 종일 상주하며 첫 번째 댓글만 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사회인 야구 리그라면 포털 사이트의 뉴스는 프로 야구 리그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의 조회수가 수백~수천 회 단위인 반면 포털 사이트에는 댓글이 수백~수천 개씩 달리는 뉴스가 수두룩하다. 역시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첫댓.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70.2%가 댓글을 읽고 있었는데, 기사 한 꼭지당 읽은 댓글의 숫자는 상위 10개 정도가 40.4%로 가장 많았고 최상위 2~3개가 35.4%였다. 상위 10개가 많았던 이유는 포털 사이트에서 통상 노출하는 댓글 수가 10개 남짓이기 때문이다. ‘드루킹’ 일당이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의 힘을 빌렸던 것도 뉴스 기사의 첫댓을 사수하기 위해서였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면 한눈에 보이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급검)’는 국민적 차원의 첫댓이다. 야구로 치면 한국 시리즈쯤 된다. 네이버 기준 하루 평균 3000만 명에 달하는 사용자의 검색어 순위를 알려주는 기능이다. 뉴스 댓글을 보려면 해당 뉴스에 들어가서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실급검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노출된다. 쏟아져 나오는 모든 정보를 알 수 없는 만큼 실급검은 무엇이 지금 다른 사람에게 이슈인지 알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실급검 역시 커뮤니티의 첫댓, 혹은 뉴스 상위 댓글과 마찬가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9년 8월 ‘조국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조국힘내세요’ ‘조국사퇴하세요’가 실급검 1,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금전적 이득을 위해 실급검 순위를 이용하려는 시도 역시 빈번하다. 사회현상의 결과를 반영하기 위한 실급검이 어느 순간 사회현상을 유발하는 시작점이 됐다. 첫댓의 ‘초두효과’는 이제 정치적, 상업적 선동에 휘둘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네이버가 오는 25일 실급검을 폐지한다. 2005년 5월 이후 16년 만이다. 작년 2월 카카오에 이어 네이버까지 폐지를 결정하면서 양대 포털에서 실급검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이 커뮤니티와 뉴스 기사의 댓글을 보고 실급검을 찾아보는 주된 이유는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만큼 타인의 의견을 준거점으로 삼기 위해서다.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은 조작과 선동, 바이럴 광고에서 자유롭지 않은 공간이 됐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인터넷에 대한 믿음은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이 돼버렸다.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