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06일(15:0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일본 화학사 JSR이 합성고무 등이 포함된 화학소재 사업부 매각을 위해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국내 복수 대기업들에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소재 규제 선봉에 섰던 일본 대표 화학사가 자사의 '모태 사업'을 매각을 두고 국내기업에 의사를 묻고 있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일본 JSR은 투자은행(IB)을 통해 연관 업종을 꾸리는 롯데케미칼, LG화학,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기업들에 자사의 엘라스토머(Elastomers) 사업부문 매각을 타진했다. 엘라스토머 사업부는 합성고무·2차전지용 음극재 바인더(Binder)·라텍스 등을 생산한다.
JSR의 전신은 민간이 60%, 일본 정부가 40% 지분을 출자해 합성고무 국산화를 목표로 1957년 출범한 '일본합성고무'다. 1960년대 일본 고도성장기와 맞물려 한 때 세계 2위의 회사로 성장하기도 했다.
특히 범용 합성고무는 물론 친환경·고기능성 타이어용 SSBR 분야에서 글로벌 수위권 기술력과 점유율을 보유 중인 회사다. 지난해 조인트벤처(JV) 설립을 마친 헝가리 공장을 포함, 일본, 태국 3개국에서 설비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선 금호석유화학과 합작사 '금호폴리켐'을 운영하고 있다.
JSR 내 엘라스토머 사업부는 2019년 1조8000억원 매출을 올리며 회사 내 4개 사업부문(엘라스토머·디지털솔루션·플라스틱·라이프사이언스) 중 여전히 가장 높은 매출 비중(37.9%)을 차지했다. 다만 전방사업인 자동차 판매 부진과 지난해 초 겹친 코로나 여파로 2019년 회계년도 기준(2019년 4월~2020년 3월) 185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해 이익 측면에선 어려움을 겪었다. 직전해엔 781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매년 800억~9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올려온 만큼 매각측에선 1조원에 육박한 매각가를 희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화학업계에선 JSR이 사업 매각 대금을 활용해 반도체 소재 및 미래 먹거리 바이오·에너지 부문에 '선택과 집중'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JSR은 합성고무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1970년대부터 반도체 소재 등 IT 소재부문을 주력사업으로 삼고 투자를 집중했다. 국내에선 지난해 초 일본의 보복 조치 품목으로 알려진 반도체 소재 포토레지스트(감광제) 분야에서 사실상 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TSMC가 앞다퉈 도입 경쟁을 펼치는 차세대 장비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에는 JSR을 포함 일본산 감광액이 필수다. 지난해 초엔 행동주의 펀드 '밸류액트'가 회사 지분 7%를 인수하면서 사업 재편에 대한 압박도 강해졌다.
현재 유력한 국내 인수후보론 롯데케미칼이 거론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7년 이탈리아 베르살리스와 JV 형태로 SSBR 시장에 진입했다. 출범 이후 연이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기대에 못미친 모습을 보였다. 업계에선 타이어 고객사들이 소재사에 엄격한 안정성을 요구하는 만큼 롯데 측이 이를 충족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JSR의 사업부를 인수할 경우 이같은 진입장벽 고민을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롯데케미칼은 2019년 히타치케미칼 인수를 시도했고 지난해엔 일본 대표 화학사 쇼와덴코에 지분 투자하는 등 일본 기업 중에서 꾸준히 투자처를 찾는 중이다.
일각에선 국내 화학사들이 국내외에서 M&A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온 반도체·모빌리티 관련 소재 등 고부가제품이 주력이 아닌 일정정도 범용화 된 합성고무의 비중이 큰 만큼 원매자 물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차준호/이상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