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안하는 '친환경차 판매목표제' 도입 논란

입력 2020-11-24 17:10
수정 2020-11-25 02:23
환경부가 내년부터 무·저공해차 보급(판매) 목표에 미달한 기업을 처벌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들의 국내 시장 진출길만 넓혀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업체만 배불리는 꼴”무·저공해차 보급 목표제는 완성차 업체가 전체 판매량 중 일정 부분은 정부가 정한 비율만큼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로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판매 차종에 따라 친환경차 보급 실적을 점수화해 비율 충족 여부를 판단한다. 의무 판매 비율은 매년 전년 대비 10~20%씩 상향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올해 4월 환경부가 돌연 해당 비율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을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면서다. 지금까지는 자료 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업체에만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앞으로는 판매 실적이 저조한 업체에 그 비율만큼 ‘저공해 자동차 보급 기여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벌금을 매기기로 한 것이다.

구체적인 벌금 수준은 관련 법안 처리 결과에 따라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국회에서는 벌금 부과 근거가 될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실제 법안이 통과되면 벌금은 2023년부터 부과될 전망이다.

문제는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한 국내 완성차 제조업체들의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GM, 르노삼성, 쌍용 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환경부가 정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전망이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해당 업체들이 부족한 판매량을 중국산 전기·수소차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신규 전기차 개발에는 통상 6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 정부가 제시한 시한 내에 도저히 판매량을 끌어올릴 수 없다”며 “벌금을 부과받는 대신 중국산 자동차를 판매해 목표치를 채우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에만 1420억위안(약 24조원)을 자국 완성차 업체에 지원하며 전기차 경쟁력을 높였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전기차 시장의 50%를 장악한 중국 업체들은 한국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벌금 부과 강행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가 BYD, 베이징자동차 등 중국 기업들의 한국 전기차 판매 대리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판매 규제”정부 규제 수준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국가 단위에서 보급 목표제를 정하고 미달 부분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사례는 없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내 일부 주가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 관계자는 “캘리포니아에는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본사가 있지만 높은 인건비 때문에 GM, 포드 등의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공장은 없다”며 “지역 기반 육성 전략 차원이라는 점에서 한국과는 맥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미 시행 강도를 높이고 있는 연비 및 탄소배출 규제와 중복된다는 점도 문제다. 가뜩이나 안 좋은 후발 완성차 업체들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GM은 6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고, 쌍용차 역시 2016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미 일찍부터 관련 제도 시행 가능성을 예고했다”며 “시행 후에도 보완 장치를 마련해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경목/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