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납부자가 급증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상속세 과세기준은 20년째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 이후 “상속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나온 건 대기업 총수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납부자는 9555명으로 2009년 4340명에서 1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 추세대로면 올해는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속세 납부액도 이 기간 1조2206억7300만원에서 3조1542억1600만원으로 158.3% 증가했다.
과거 상속세는 ‘부자들만 내는 세금’으로 여겨졌다. 2000년까지만 해도 상속세를 낸 사람은 138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속세 납부자는 점차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지만 과세기준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실상 ‘상속세 증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00년 2억원이 채 넘지 않았던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9억원대로 치솟았다. 상속세 과세기준은 2000년에 최고 세율 50% 적용 과세표준을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넓힌 이후 20년째 그대로다. 공제도 마찬가지다. 일괄공제(5억원) 배우자공제(5억~30억원) 등 상속세 주요 공제는 1996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전면 개편한 이후 20년 넘게 그대로다.
정인국 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근 몇 년간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결과 시가 20억원이 넘은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며 “아파트 한 채만 보유하고 있어도 시가 20억원이 넘으면 자식이 없는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자진신고 세액공제 한도는 쪼그라들어 상속세 부담이 커지고 있다. 2016년까지는 상속세를 기간 내에 자진신고하면 세액 10%를 공제해줬지만 2017년부터 한도를 점차 축소해 지난해부터는 3%로 줄었다. 자진신고 세액공제 축소는 상속세 수입이 2017년 2조원 이상 걷히고 지난해 3조원을 넘기는 등 급증한 원인으로 꼽힌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상속세 증가 속도는 가파른 편이다.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3위였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증여세 부담 순위는 2018년엔 3위로 상승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일반기업 최대주주 보유 지분 상속 시 60%)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경제 규모 변화에 따라 상속세 공제 한도를 늘려가는 추세다. 미국은 2018년 상속세 공제 한도를 1인당 500만달러(약 58억원)에서 1000만달러(약 116억원)로 두 배로 올렸다. 노르웨이 캐나다 뉴질랜드 등 OECD 13개 회원국은 아예 상속세를 없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