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기업·가계 모두 빚으로 버티는 경제, 얼마나 가겠나

입력 2020-05-31 18:44
수정 2020-06-01 00:08
코로나 경제위기 앞에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까지 하루하루를 빚으로 버티는 형국이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월 이후 석 달간 국내 기업과 가계의 은행 신규대출이 75조4000억원 급증했다. 증가폭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배 큰 규모다. 은행 돈을 안 쓰던 대기업들마저 21조7000억원을 빌렸다. 달러빚도 동시에 늘었다. 국내 기업과 금융회사의 외화부채(대외채무)가 지난 1분기 167억달러(4.8%) 증가했다.

코로나가 불러온 급격한 경기위축 속에 빚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음을 새삼 확인케 한다. 실직·무급휴직에 처한 가계가 손 벌릴 곳은 대출창구밖에 없다. 소상공인과 기업들도 매출 추락, 수출·수주 급감에다 자금시장 경색 조짐마저 보이자 앞다퉈 빚을 냈다. 정부는 재난지원금 등을 푸느라 재정적자가 벌써 작년의 두 배(2차 추경까지 89조4000억원 예상)다.

‘빚으로 버티는 경제’는 자칫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는 가더라도 빚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연 0.5%)로 이자부담이 다소 줄긴 하겠지만 이 때문에 부채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83%에 이르렀다. 이 비율이 80%를 넘으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국제결제은행(BIS)도 경고한 바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각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어떻게 벌어 갚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외 전망기관들은 물론 한국은행까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잘해야 -0.2%(최악의 경우 -1.8%)로 대폭 낮춘 마당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빚으로 GDP를 끌어올린다는 ‘좋은 채무론’ 같은 해괴한 논리가 아니라, 기업과 가계가 ‘빚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끔 경제활동 의욕을 되살리는 데 주력해야 할 때다. 나랏빚을 내 퍼붓는 재정 지출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규제혁파와 병행해야 한다. 투자와 소비 진작을 도모하는 것 외에 한 푼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