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근심거리 중 하나였던 가계부채 증가세가 올 들어 둔화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신용카드 할부금액 등이 줄어든 영향이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급증세를 이어가 경제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20년 1분기 중 가계신용(잠정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611조3000억원으로 전분기 말(1600조2000억원)에 비해 11조1000억원(0.7%) 늘었다. 이 같은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0.2%) 후 가장 낮은 수치다. 가계신용은 은행과 비은행 금융회사의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할부액을 비롯한 판매신용을 합한 금액으로, 통상 가계부채라 하면 가계신용을 가리킨다.
가계신용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 1.1%, 3분기 1.0%, 4분기 1.8%로 1%대를 유지했지만 올 들어 0%대로 낮아졌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 증가율(4.6%)은 작년 1분기(4.9%) 후 최고치지만 10%대를 넘어선 2017년부터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이처럼 가계 빚 증가세가 꺾인 것은 신용카드 할부액을 비롯한 판매신용 잔액이 89조6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6.4%(6조1000억원) 줄어든 영향이다. 판매신용은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소비자들이 바깥 활동을 자제하면서 씀씀이를 줄였다는 얘기다.
가계신용에서 비중이 가장 큰 가계대출은 1521조7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7조2000억원(1.1%) 늘었다. 지난해 3분기(0.9%) 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컸다. 주택을 사고파는 거래가 늘면서 주택담보대출의 1분기 말 잔액은 858조2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5조3220억원(1.8%)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율은 2017년 3분기(2.1%) 후 최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3분기 19만8000가구였던 전국 주택 거래량은 지난해 4분기 29만3000가구, 올해 1분기 32만5000가구로 늘었다. 전국 전세 거래량도 지난해 4분기 30만 가구에서 올해 1분기 35만 가구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가계 빚 증가세가 둔화하고는 있지만 워낙 육중한 규모인 만큼 민간 소비를 억누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83.3%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위험 수위(80%)를 넘어섰다. 올해도 코로나19 충격과 저물가 영향으로 명목 GDP 증가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 가계부채 비중이 80%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