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장려→규제' 오락가락 임대사업자 정책, 전셋값 급등 도화선 되나

입력 2020-01-21 18:46
수정 2020-01-28 17:06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잇단 부동산 규제로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자 이번엔 서울과 수도권 지역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다. ‘투기와의 전쟁’에 나선 정부가 주택 공급을 제대로 늘리지 않고 수요 억제에 치중한 부작용이 국민 주거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권장’에서 ‘규제’로 돌아선 민간 임대사업자 정책이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가 다주택자(임대사업자)를 ‘투기 주범’으로 지목해 각종 세제 혜택을 축소하면서 시장 충격(전셋값 급등)을 줄일 제도적 장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서다. 오락가락하는 임대사업자 정책이 전셋값 도미노 상승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중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게 ‘민간 임대사업자 활성화’다. 정부가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2017년 ‘8·2 부동산 대책’과 ‘12·13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내놨다. 민간의 자발적 주택임대 등록을 촉진하기 위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이 정책은 전월세 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전환과 신규 임대사업자가 증가하면서 임대 물량 재고가 꾸준히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누적 기준) 사업자는 41만3000명, 임대주택은 137만7000가구에 달했다. 2018년 1월보다 사업자 수는 14만5000명, 임대주택은 37만 가구 각각 증가했다. 민간 임대사업자의 전월세 주택은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최장 8년간 의무적으로 임대해야 하고, 임대료도 재계약 시 5% 이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정책 효과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국민은행이 운영하는 KB부동산 리브온 통계에 따르면 최근 2년(2017년 12월~2019년 12월)간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이 15.62% 오른 반면 전셋값은 1.28% 상승하는 데 그쳤다. 민간 임대사업자 활성화 정책이 서민 주거안정의 ‘안전판’ 역할을 해낸 것이다.

민간 임대사업자 정책은 2018년 ‘9·13 부동산 대책’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정부는 다주택자(임대사업자)가 가격이 많이 오른 ‘조정대상 지역’에서 새로 취득한 임대주택에 대해 세금을 중과(重課)하고, 종합부동산세도 합산 과세하기로 했다.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에서는 혜택을 더 줄였다. 임대주택 가액 기준(상한 가격)을 추가해 공시가격 6억원(수도권 기준)을 넘는 임대주택은 취득세와 재산세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정부 "다주택자가 투기 주범"

정부의 정책 선회는 ‘다주택자(임대사업자)가 투기 주범’이라는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다주택자들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들이는 이른바 갭(gap) 투자를 활용해 주택을 늘리고, 임대주택으로 등록해 세제 혜택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폭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전월세 안정에 기여한 민간 임대사업자를 이번엔 ‘투기 주범’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투기 온상으로 전락한 임대주택사업 탓에 집값 급등이 야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임대주택(등록 기준)은 47만3000가구에 이른다. 서울 전체 주택 370만 가구의 12.7%가량이 최장 8년간 임대에 묶여 있어 매물 감소를 부추겨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임대주택 비중 선진국의 30% 수준

임대주택 활성화는 긴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할 주요 부동산정책이다. 집값과 전월세 안정을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도 꾸준히 주택 공급을 늘리고 임대주택 재고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임대주택 비중이 30~50%에 달한다. 정부가 재정 여력이 부족한 탓에 민간에 각종 혜택을 줘 임대주택 재고를 늘린다.

한국은 주택 공급을 제대로 늘리지 않은 탓에 집값이 올랐지만 임대사업자를 투기꾼으로 몰고 있다. 부동산정책이 시장이 아닌, 정치 영역에서 판단되고 시행되니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의 최근 자료(지난해 11월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새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업자는 4507명으로 전월보다 7.5% 줄었다. 신규 등록된 임대주택도 7707가구로 5.3% 감소했다. 임대사업자 혜택을 크게 줄인 12·16 부동산 대책 여파가 본격적으로 미치는 올해에는 신규 사업자와 등록 임대주택 수가 급감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임대사업자 규제로 전월세 가격 급등 시 충격을 완화해줄 안전판이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서울·수도권 전셋값은 요동치고 있다. 강력한 수요 억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12·16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집값 상승세가 주춤한 반면 전셋값은 큰 폭으로 뛰고 있다. 대출 규제로 집 사기를 포기하고 전세로 눌러앉는 사례가 많은 데다 5월 민간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청약 대기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대학 입시제도 개편과 이사철 수요 등이 겹쳤다.

요동치는 서울·수도권 전세시장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0.11%로 매매가격 상승률(0.04%)을 크게 웃돌았다. 강남과 목동 등 학군이 우수한 지역은 최근 한두 달 새 1억~2억원 오른 곳이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지난 20일 시행에 들어간 9억원 초과 주택 소유자와 다주택자에 대한 전세대출 규제가 전세 물건 부족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조치로 서울에서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채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강남 등에서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전세대출 만기 시 연장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여윳돈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옮겨가야 할 상황에 놓이게 돼 전세입자들의 연쇄 이동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으로 서울에서 9억원이 넘는 주택은 전체의 37.7%에 달한다.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은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은 은행권 어디서도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게 돼 전세난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전월세상한제 도입 나선 정부

정부와 여당은 전셋값이 급등하자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연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차인이 원하면 2년 단위 전세 계약 갱신을 추가로 1~2회 허용하고, 전세금 인상도 5%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새 아파트 공급을 늘려 전세시장을 안정화시키는 정공법 대신 위헌 소지가 있는 대증처방에 몰두하고 있다.

두 제도는 과도하게 재산권을 침해하는 데다 민간의 임대물량을 감소시켜 전셋값 불안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전세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도 그해 전셋값이 17.5% 뛰었고, 이듬해인 1990년에는 20.2%나 폭등한 바 있다. 더구나 내년에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2만1739가구(부동산114 집계)로 올해(4만2012가구)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고된 터다.

박합수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월세 상한제 등은 부작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서민주거 안정에 역점을 둔다면 주택 공급과 임대사업자 혜택을 늘리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