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17일(16:2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반도건설이 한진그룹 지주사 격인 한진칼의 지분을 작년 말에 대량으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했다가 경영참여로 갑작스레 변경한 것이 ‘보유목적 허위 공시’에 해당돼 의결권 제한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호개발 등 반도건설 계열사들은 작년 10월1일을 기점으로 한진칼 지분을 5% 이상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11월30일에도 이들은 두달간 24차례에 걸쳐 장내에서 지분을 사들여 6.28%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목적은 단순투자였다. 이후에도 18차례에 걸쳐 1월6일까지 8.28%를 샀다. 그러나 지난 10일, 반도건설은 투자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다고 공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일정 지분을 확보한 다음에야 경영참여 목적을 밝힌 반도건설의 행위가 투자자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돕고 회사가 향후 경영권 분쟁에 방어를 준비할 기회를 보장하려는 관련 규정의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부터 투자 관련 공시의 투자목적에 ‘단순투자’와 ‘경영참여’를 나눠서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2003~2004년 KCC가 현대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비공개로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인 다음 회사 인수를 선언하는 수법을 쓴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투자 목적을 허위 공시했다는 이유로 주식처분명령을 받은 사례도 있다. 컨설팅업체인 DM파트너스는 2007년 3월 상장사 한국석유공업의 주식을 11.87% 사들인 뒤 처음에는 단순 장내매수라고 했다가 다음달 보유지분을 17.64%까지 늘리고 나서야 ‘경영참여 계획이 있다’고 공시했다. DM파트너스는 이후 지분을 31.93%까지 더 확대하고 적대적 인수를 추진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DM파트너스가 초기에 사들인 14.99%는 경영참여 목적을 숨기고 매집한 것이어서 보고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해당 주식을 팔라고 명령했다. DM파트너스는 이 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으나 2008년 패소했다.
반도건설 역시 1월10일 경영참여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단순투자’를 목적으로 3개월에 걸쳐 대량으로 지분을 매집한 만큼, 향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다만 차이점도 있다. DM파트너스 측은 처음부터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법무법인의 조력을 받은 증거 등이 확인되었으나, 반도건설은 한국경제신문 질의에 대해 "법무법인 측의 조력을 받은 것은 단순히 공시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또 당시 DM파트너스는 투자조합을 결성할 때부터 이 회사를 인수합병(M&A)하겠다는 전략을 밝혔고, 시장에서 돈을 빌려서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이 뚜렷했다는 점이 재판 과정에서 인정됐다. 반면 반도건설은 총 15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이 자체 예금에서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처음부터 경영참여를 전제로 투자전략을 세웠는지 여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두 사례 간의 차이도 있는 만큼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도건설의 행위가 현행 규정의 취지에는 다소 어긋나는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양길성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