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빠르면 이번 주 발표 예정인 새로운 ‘근로자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이 산업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한경 12월 21일자 A1, 4면). 새 지침에 따르면 제조업의 하청업체 도급직원들이 원청업체로부터 간접적인 지휘라도 받거나, 도급업체의 업무가 전문성이 없는 등의 경우에도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간주돼 처벌받는다. 제조업은 파견이 금지된 업종이어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새 지침은 하청업체의 실체가 없거나 하청업체 직원이 원청업체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는 경우에만 ‘불법파견’으로 규정한 기존 지침의 불법 판정 기준을 대폭 넓혔다. 고용부는 “최근 사법부 판단에 맞춰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 지침을 마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정책 불확실성에 떨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적법한 사내하도급을 운영해 왔더라도 새 기준을 들이대면 하루아침에 불법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새 지침은 세계적인 추세와 융·복합, 분업·전문화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스르는 획일적인 도급·파견규제를 더욱 강화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들을 낳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노동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용 유연화 방안을 봉쇄해 고용 경직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점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세계 최악수준이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은 청소·경비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노동자 천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도 파견 업종에 제한이 없다.
불법성 여부를 정부 감독관에게 맡겨 정책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불법파견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지만 올해만 해도 철강업체 생산·관리 시스템을 통한 원청 및 하도급업체 정보 공유사건에서 ‘합법(포스코)’과 ‘불법(현대제철)’의 엇갈린 판결이 나왔다. 산업현장의 광범위한 아웃소싱화와 협력생산 체제 때문에 도급과 파견 구분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탓이다. 법원 판결도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는데 근로감독관이 어떤 기준으로 불법과 합법을 판정할 수 있겠는가. 정부 정책방향에 따라 근로감독관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과잉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과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파견근로 관련 지침을 충분한 의견수렴과 공론화도 없이 밀어붙이면 심각한 부작용을 면하기 어렵다. 다양한 고용형태를 인정하는 선진국과는 달리 획일적 잣대로 도급과 파견을 막아버리면 기업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과 지나치게 까다로운 안전·환경 기준 등으로 인해 경제활력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도급 및 파견 제한은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노동전문가는 물론 일자리를 원하는 근로자와, 아웃소싱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기업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행정은 ‘행정독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