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기업 신라젠이 지난 3월 키움증권 등을 대상으로 발행한 전환사채(CB) 1100억원어치를 조기상환한다고 31일 발표했다. 만기가 5년 가까이 남은 물량으로 회사 자본총계 1127억원(지난 상반기 기준)에 육박하는 규모다. 다른 계기를 마련해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 유지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라젠은 이날 “지난 8월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펙사벡’의 무용성진행평가 결과에 따라 키움증권 등에 발행한 CB의 연 이자율이 3%에서 6%로 높아졌다”며 “고율 이자로 인한 자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채권자와 합의해 이를 상환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CB는 만기가 2024년 3월21일이다. 내년 3월21일부터 전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키움증권 등이 이를 행사할 가능성은 이미 낮아진 상태다. 펙사벡의 글로벌 3상 실패로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키움증권 등도 채권-채무관계 조기 청산에 동의했다. 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지는 내년 1월까지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이를 포기하기로 했다. 이자를 받는 것보다 리스크(위험도)를 줄이는 게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젠은 CB 상환금액을 회사가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에서 마련했다. 신라젠 관계자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 309억원, 당기손익 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 928억원, 기타유동금융자산 640억원을 더한 1877억원에서 절반 이상을 털어 CB 상환금액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신라젠 측은 “향후 신장암 등의 임상에서 긍정적인 데이터가 도출된다면 전략적 투자 파트너 유치를 포함해 다방면으로 자금을 추가 조달할 계획”이라며 “주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당사 임직원이 펙사벡 임상 성공과 조속한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자금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일각에선 회사의 존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까지 나온다. 진행중인 다른 임상은 전임상이나 1상 단계이고 시장의 기대치도 크지 않다. 일부 임원이 자사주 매도로 차익을 본 것과 관련해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투자자의 인식도 부정적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