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로 對美 보복…中당국자 강력 시사

입력 2019-05-29 17:55
수정 2020-11-15 20:14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희토류를 보복 카드로 쓸 수 있다고 강력 시사했다. 희토류는 반도체와 휴대폰, 전기자동차 등 첨단 제품에 쓰이는 필수 원재료로 미국은 전체 희토류 사용량의 80%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희토류와 관련해 한 책임자가 관영 CCTV와 인터뷰한 내용을 29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 책임자는 인터뷰에서 “만약 누군가 우리가 수출하는 희토류로 제조한 제품을 이용해 중국의 발전을 저지하고 압박하려 한다면 중국 인민 모두 불쾌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은 희토류 자원의 국내 수요를 우선시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며 세계 각국의 정당한 수요를 만족시킬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인도 이날 트위터에서 “중국은 희토류의 미국 수출을 제한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재무부는 28일(현지시간) 내놓은 ‘2019년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관찰 대상국’으로 유지하며 “환율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관찰 대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中의 반격 '눈에는 눈'…희토류 무기화·인터넷 규제·WTO에 美 제소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다소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던 중국이 공격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대표 기술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데도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여론전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갈수록 미국의 공세가 거세지자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희토류 무기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은 또 미국 기업을 겨냥한 새로운 인터넷 규제 방안도 공개했다.

희토류 제한하면 美 첨단산업에 타격

중국 국민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관영 방송인 CCTV는 지난 28일 밤늦게 발개위 책임자와 한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CCTV는 이 책임자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20일 장시성 간저우에 있는 희토류 생산공장을 시찰한 배경과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정부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근거 없는 압박에 반격하는 무기로 중국이 희토류를 쓸지 여부에 답한다”며 “누군가 우리가 수출하는 희토류로 만든 제품을 이용해 중국의 발전을 저지하고 압박하려 한다면 간저우 인민은 물론 중국 인민 모두 불쾌할 것”이라고 했다.

발개위가 중국 국민의 분노를 언급한 것은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희토류 수출 제한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보복으로 한국 단체관광 금지령과 한한령(限韓令)을 내렸을 때도 중국 인민의 정서를 반영했다고 내세웠다.

이 책임자는 또 “희토류 자원의 중국 내 수요를 우선시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세계 각국의 정당한 수요를 충족시킬 용의가 있다”고 했다. 수요 앞에 ‘정당한’이란 표현을 써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수요는 충족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던졌다는 해석이다.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대변하는 매체로 평가받는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인도 이날 트위터에 “내가 알기로는 중국이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중국은 또 다른 보복 조치들도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논평에서 희토류를 언급하며 “미국은 중국의 반격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희토류는 디스프로슘, 네오디뮴, 란탄 등 희귀 광물질 17종을 말한다. 휴대폰, 반도체, 전기자동차 등 첨단제품과 미사일, 레이더 등 첨단 군사무기의 핵심 부품에 사용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으로 연간 12만t의 희토류를 공급하고 있다. 이는 세계 공급량의 70%에 달한다.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희토류의 80%가량이 중국산이었다.

인터넷 이용자 데이터 국외 반출도 금지

중국 인터넷 감독기구인 국가인터넷판공실은 이날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내 인터넷 이용자에 대한 데이터를 국외로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터넷 데이터 저장에 관한 규정’ 초안을 공개했다. 규정에 따르면 기업들은 중국 내 인터넷 트래픽을 외국으로 보내서는 안 되며 정부 기관이 국가안보나 사회 관리, 경제적 규제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데이터를 요구하면 이를 제공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 확전 속에 마련된 이번 규정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응하는 조치”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많은 미국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판공실은 지난주에도 자국 내 정보기술(IT) 인프라 사업자가 인터넷 관련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조달할 때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는지 점검하는 내용의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했다.

중국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시장접근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이 WTO의 안보 예외 규정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기업에 취한 일방적인 제재 조치를 즉각 없애야 한다”고 요구했다. 화웨이와의 거래 금지 명령을 내린 미국 정부를 겨냥한 발언이다.

화웨이도 미국 정부가 ‘폭정’을 하고 있다며 29일 소송을 제기했다. 화웨이는 “미국 정부와 도급업체들의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군비 지출 조항의 합헌 여부를 판결해달라”는 즉결 심판 청구서를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출했다.

베이징=강동균/워싱턴=주용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