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김희경 기자 / 사진 황지은 기자] 이성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가죽소파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언제나 있지만 모르고, 또 다시 바라보면 새삼 새로운 존재. 가끔 온몸을 소파에 기대면 절로 지어지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그에게도 적용됐다.최근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난 이성민은 연신 “많이 긴장 된다”며 어색하게 웃어보이다가도 이내 특유의 단단한 눈빛을 드러내기도 했다. 겉과 속이 다른 배우라고 하기 보단 그 모든 것이 이성민을 상징하고 있었다.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는 10년 전 실종된 딸 유주(채수빈)를 찾아 헤매던 아버지 김해관(이성민)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와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로봇, 소리’는 대구를 배경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실종된 딸을 찾는 해관의 모습에서 시작되기에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부분은 필수불가결했다. 허나 감독과 스태프 모두 참사에 대한 내용이 영화의 중심으로 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잊고 싶었던 이야기일 수 있기에.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잊히길 바라는 걸 저희가 다시 끄집어내는 거니까요. 그래서 영화 촬영도 조심스럽게 했고요. 저는 오히려 ‘조금 더 참혹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감독님은 끝까지 고심하다 최대한 배제했어요. 그건 감독님이 그 사건으로 인해 발생된 분들을 향한 존중이자 배려였던 거죠.”영화 촬영 전 실제 대구 참사와 관련된 추모비와 대구 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았다는 이성민은 “정말 끔찍했다. 다 보지 못했을 정도”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그렇게 대구 참사의 무거운 감정을 안고 이성민은 다소 격한 연기를 선보였으나 이호재 감독은 최대한 격양되지 않은 연기를 선보일 것을 요구했다는 후문. 이성민 또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며 이호재 감독의 의견을 존중했다.“감독님이 감정을 눌러줬다는 게 맞을 거예요. 제가 처음 잃어버린 딸의 위치를 알게 됐을 때와 딸의 남자친구와 공원에서 딸의 목소리를 음성으로 들을 땐 정말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감정이 터졌다고 할까. 하지만 감독님은 더 뒤에 있을 하이라이트에서 감정이 터지시길 바라셨죠. 제가 앞에서 한 번 울어버리면 정화가 돼서 감정선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잖아요.”
이성민은 김해관과 딸을 가진 아버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극중 김해관과 김유주의 갈등은 모든 부녀간에 한 번씩은 가지고 있을 흔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공감을 자아낼 전망. 딸의 존재를 미성숙하다 판단하고 그가 가진 꿈에 대해 “넌 아직 어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는 어떻게 봤을까.“김해관이라는 아버지의 애정 표현이라 생각해요. 딸이 미운 건 절대 아니잖아요. 여럿도 아닌 하나 뿐인 딸인데요. 두 사람의 갈등은 서로를 사랑하고 안하고의 문제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그러한 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김해관이 소리를 만났을 때가 재밌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중년의 남자가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되는 기계를 만났을 때가 영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죠.”“‘로봇, 소리’가 딸을 키울 때 영향이 있었다기 보단 딸이 이해되는 부분들을 많이 느꼈어요. 좋은 아빠가 되길 노력하는 저 역시도 딸과 충분히 극중에서의 다툼 같은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촬영할 때도 정말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딸은 아빠와 정말 묘한 관계에요. 좀 이상하기도 하고, 복잡하고 달라요. 이해가 안 간다고 하기 보단 앞으로 닥칠 일들을 저는 다 보게 되잖아요. 부모보다 친구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을 거고, 그러다 남자친구가 생기고, 시집을 가고, 어느 집의 며느리로 들어가서 아이까지 낳는 그 모든 과정을요. 아직 안 보내봐서 어떤 기분일진 모르겠지만 상상하면 제 딸이 아주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해관의 심정도 그렇지 않을까요?”이성민은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느낌을 강하게 어필했다. 허나 카메라 앞에 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KBS ‘브레인’(2011), MBC ‘파스타’(2010) ‘골든타임’(2012) ‘더킹 투하츠’(2012) 등으로 신 스틸러로의 활약을 보였던 그는 tvN ‘미생’(2014)으로 본격적인 주연 배우로 성장한 그는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로봇, 소리’로 스크린 첫 주연작을 마주한 그의 소감은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이름이 두 번째로 들어갈 때와 첫 번째로 들어갈 때가 다르더라고요. ‘로봇, 소리’를 준비하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영화에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에게도 전화해서 ‘미안하다’라는 말도 이렇게 많이 할 줄 몰랐어요.(웃음)”“원래 잘 떠는 편이 아니에요. 실수는 안 하려고 하지만 예전에는 묻어가던 이름이 있었잖아요. 이제는 이름이 없으니까 영화의 뚜껑을 열었을 때 잘 돼서 부담감을 좀 덜었으면 좋겠어요.”그는 마치 대중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무명의 연극배우처럼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년 이상의 연기 경력에도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겸손하고 또 겸손했다. “이번에도 하나를 배웠다”고 말하는 이성민의 모습을 앞으로도 오래 지켜보고 싶다.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